침묵으로 순종하신 그리스도 – 빌라도 앞에 서신 예수님
마가복음 15:1-5은 예수님께서 빌라도에게 끌려가 재판을 받으시는 장면입니다.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고소에 이어, 로마 총독 앞에서 예수님은 대부분 침묵으로 일관하십니다. 이는 무력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사를 이루시기 위한 철저한 순종의 침묵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고소와 억울함 앞에서도 한마디 항변하지 않으시며, 스스로 어린양처럼 그 길을 걸어가십니다. 그 침묵은 인류의 죄를 대속하는 구속의 침묵이었습니다.
아침 일찍 모인 공회 – 이미 결정된 판결
본문은 “새벽에 대제사장들이 장로들과 서기관들, 곧 온 공회와 더불어 의논하고 예수를 결박하여 끌고 가서 빌라도에게 넘겨 주니”(막 15:1)라고 시작합니다. 이 재판은 공정한 절차가 아닌, 이미 결론이 정해진 종교적 정치적 조작이었습니다.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스스로는 사형 권한이 없었기에, 예수님을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야 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단순한 신성모독자가 아닌, 로마 질서를 위협하는 반역자로 몰아가려 했습니다. 자신들의 율법으로는 예수님을 죽일 수 없기에, 정치적 모함과 거짓 고소로 예수님을 죽이려는 술수를 쓴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인간의 악한 시도조차 하나님의 구속 계획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손을 거쳐 로마 법정으로 넘어가며, 유대인뿐 아니라 이방인의 죄까지 짊어지고 가는 보편적 구속의 길을 시작하십니다. 이는 유대의 전통만을 위한 희생이 아닌, 모든 민족과 열방을 위한 구원의 확장입니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 권세 앞에서도 흔들림 없는 주님
빌라도는 예수님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라고 묻습니다(막 15:2). 이는 단순한 사실 확인이 아니라, 정치적 위협을 판단하기 위한 질문이었습니다. 유대인의 왕이라는 칭호는 곧 로마 황제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될 수 있는 민감한 표현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에 대해 “네 말이로다”라고 짧게 대답하십니다. 이 말씀은 긍정도 부정도 아닌, 질문자의 양심과 판단에 맡기시는 주님의 고유한 방식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왕권이 이 세상의 정치적 왕권이 아니라는 점을 아시기에, 빌라도와의 정치적 논쟁에 휘말리지 않으십니다.
이 짧은 응답은 예수님의 주권을 드러냅니다. 그분은 지금 피고인이지만, 실제 재판의 중심은 예수님이 아니라 빌라도였고, 이 재판의 실질적 권위는 하나님께 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통치자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주님의 태도는, 오히려 진정한 왕의 권위를 보여주는 모습입니다.
침묵으로 구속을 이루신 어린양
빌라도는 여러 고소가 이어짐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더 이상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는 것을 보고 이상히 여깁니다(막 15:4-5). “이에 대제사장들이 여러 가지로 고발하는지라 빌라도가 또 물어 이르되 아무 대답도 없느냐… 예수께서 다시 아무 말씀으로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빌라도가 놀랍게 여기더라.”
예수님의 침묵은 겁이나 당황 때문이 아닙니다. 이는 고난받는 종의 모습으로, 이사야 53장에서 예언된 바 “도수장에 끌려가는 어린 양과 같이 잠잠하였고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다”는 말씀의 성취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변호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는 모든 죄인들의 변호인이 되시기 위함이며, 억울함조차도 참으심으로써 완전한 속죄를 이루시기 위함입니다. 이 침묵은 능동적인 순종이며, 하나님의 뜻 앞에 완전한 복종입니다.
이 장면은 또한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줍니다. 우리는 억울함 앞에서 쉽게 분노하고, 자신을 정당화하려 하지만, 예수님은 침묵으로 자신을 내어주십니다. 이는 우리의 죄가 얼마나 크고, 그 죄를 감당하시기 위해 그분이 얼마나 철저히 자신을 비우셨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마무리
마가복음 15:1-5은 예수님께서 종교적 권력과 정치적 권력 앞에서 침묵으로 자신을 내어주시는 장면입니다. 빌라도 앞에서 예수님은 스스로를 변호하지 않으시고, 묵묵히 고소를 받아들이시며 구속사의 길을 걷기 시작하십니다. 이는 단순한 무력함이 아니라, 인류의 죄를 대신 지기 위한 철저한 순종이었습니다. 구속사는 변호가 아니라, 희생으로 완성됩니다. 고난주간의 이 말씀은 우리가 억울함보다 복종을, 정당함보다 하나님의 뜻을 좇는 순종의 길로 부름받았음을 일깨워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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