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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선지서

이사야 53장 10절 강해,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며

by 파피루스 2025. 4.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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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그를 상하게 하시기를 기뻐하사

이사야 53장 10절은 구속사의 가장 깊고 신비한 영역을 드러내는 말씀입니다. 이 구절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이 단순한 순교나 인간적인 비극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쁘신 뜻 안에서 이루어진 구원의 경륜이었음을 선포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고난을 통하여 성취되었고, 그 고난이 결국 생명을 낳고 번성케 하는 열매를 맺게 되었음을 이 구절은 명확하게 가르쳐줍니다. 본문은 우리의 상식과 본능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섭리를 보여주며, 우리가 구원을 어떤 경로로 받게 되었는지를 더 깊이 이해하게 합니다.

여호와께서 그를 상하게 하시기를 기뻐하사

“여호와께서 그를 상하게 하시기를 기뻐하사” 이 말씀은 인간적으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종을 상하게 하시기를 기뻐하셨다니,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습니까? 그러나 이 구절을 단순한 감정적 기쁨이 아닌, 하나님의 뜻의 성취라는 신학적 맥락에서 이해할 때 그 진의가 드러납니다.

‘상하게 하시다’(דַּכְּאוֹ, dakk’ô)는 앞서 5절에서도 나온 동사로, 으깨다, 짓밟다, 분쇄하다는 의미를 지닌 단어입니다. 이는 단순한 상처가 아니라, 생명 자체가 철저히 부서지는 것을 말합니다. 바로 십자가에서 이루어진 예수님의 죽음이 그러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이 철저히 짓밟히는 고난을 허락하셨고, 그것을 기뻐하셨다고 이사야는 선포합니다.

여기서 ‘기뻐하다’(חָפֵץ, chafez)는 감정적인 쾌감이 아니라, 의지를 동반한 기쁨, 곧 하나님의 뜻과 결정이 온전히 이루어지는 데서 오는 만족과 안식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을 기뻐하셨다는 말은, 그 고난을 통해 죄인이 구속되고 하나님의 의가 만족되며 사랑이 완성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고난은 계획되지 않은 우연한 불행이 아니라, 창세 전부터 예정된 구원의 계획이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사도행전 2장 23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예수님의 십자가는 인간의 악의가 극에 달한 사건이었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예정하신 뜻과 완전한 주권 아래에서 이루어진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 앞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 지혜와 주권을 동시에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며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며"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단순한 수동적 죽음이 아니라, 적극적인 제사로서의 기능을 가졌음을 보여주는 표현입니다. 히브리어로 ‘속건제’는 ‘אָשָׁם’(asham)이라는 단어로, 구약의 제사 제도에서 죄를 보상하고 하나님의 진노를 가라앉히는 제사를 의미합니다.

속건제는 죄에 대한 보상뿐 아니라, 성소의 거룩함을 회복하고 하나님의 백성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기능이 있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죄를 없애는 기능을 넘어, 깨진 관계를 다시 잇고 회복시키는 회복의 제사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바로 그 속건제의 완성입니다. 그는 단지 죽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영혼을 제물로 드리셨습니다. 이는 단순한 육체의 고난이 아니라, 존재 전체의 헌신이었습니다.

히브리서 9장 14절은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라는 표현으로, 예수님께서 자신의 영혼 전체를 제물로 드리신 제사적 성격을 강조합니다. 그는 누군가에 의해 억지로 제물이 된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셨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제사가 율법 아래의 제사와 본질적으로 다른 점입니다. 그분은 완전한 제사장이자, 완전한 제물이셨습니다.

이사야는 고난받는 종이 자신의 존재를 제물로 내어드림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이는 우리로 하여금 구원은 거저 주어진 것이지만, 결코 값싼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합니다. 우리의 죄값은 예수님의 영혼이라는 무한한 대가로 지불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은혜 앞에서 무감각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의 삶을 속건제물처럼 하나님께 내어드리는 헌신의 응답이 필요합니다.

그가 씨를 보게 되며 그의 날은 길 것이요 여호와의 뜻이 그의 손에서 형통하리로다

이사야 53장 10절 후반부는 고난과 죽음으로 끝난 듯한 이 고난받는 종의 생애가 사실은 부활과 승리로 연결되는 하나님의 구속 역사의 완성을 보여줍니다. 이는 죽음이 끝이 아니며, 하나님의 뜻이 오히려 그 죽음을 통하여 온전히 이루어진다는 선언입니다.

“그가 씨를 보게 되며” 여기서 ‘씨’(זֶרַע, zera‘)는 자손, 곧 후손을 의미합니다. 이는 문자적으로는 자녀를 의미하지만, 신학적으로는 그리스도를 통해 태어나는 새로운 백성, 곧 교회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결혼도 자녀도 없으셨지만, 그의 십자가 죽음 이후 교회가 태어났습니다. 이는 부활의 결과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셨지만, 부활을 통해 생명의 첫 열매가 되셨고, 그를 믿는 자들은 모두 그 씨로서 거듭난 자들이 되었습니다.

“그의 날은 길 것이요”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영원한 생명을 암시합니다. ‘날이 길다’는 표현은 단순히 수명이 연장된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에서의 통치를 뜻하는 상징적 표현입니다. 그는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살아나셨으며, 영원한 왕으로서 다스리십니다. 요한계시록 1장 18절에서 예수님은 “나는 살아 있는 자라.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라”고 선포하십니다.

“여호와의 뜻이 그의 손에서 형통하리로다”는 선언은 하나님의 구속 계획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전히 성취되었음을 강조합니다. ‘형통하다’(צָלַח, tsalach)는 전진하고 뚫고 나가 승리하는 개념을 포함합니다. 예수님의 고난은 실패가 아니었습니다. 그의 죽음은 패배가 아니었고, 하나님의 뜻은 그의 순종을 통해 완전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이는 창세기 3장 15절의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한다는 첫 복음의 성취이며,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인류 구원의 역사적 완성입니다.

결론

이사야 53장 10절은 고난받는 종의 사역이 단순한 슬픔과 고통으로 끝나지 않음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그는 짓밟히셨지만 하나님의 기쁨이었고, 죽으셨지만 속건제물이 되었으며, 죽음을 통과해 씨를 보게 되었고, 영원히 살아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비극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쁨이요 승리였습니다. 그분은 침묵 가운데 자신의 생명을 하나님께 드렸고, 그 헌신은 죽음을 이기고 생명을 낳는 열매가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믿고 누리는 구원은 바로 그 순종의 열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말씀 앞에서 단지 감동만이 아니라 결단으로 응답해야 합니다. 주님이 자신을 제물로 드리셨다면, 우리도 우리의 삶을 산 제사로 드려야 합니다. 그의 손에서 형통한 하나님의 뜻은 이제 교회를 통해, 믿는 자들의 삶을 통해 계속해서 이루어집니다. 그 구속의 흐름에 우리가 함께 쓰임받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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