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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선지서

이사야 53:3 강해, 고난의 사람, 질고를 아는 자

by 파피루스 2025. 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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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시받은 자, 그러나 우리를 위해 오신 그리스도

이사야 53장 3절은 고난받는 종의 정체를 세상 앞에 드러내며, 왜 그분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는지를 보여주는 구절입니다. 사람의 눈에 보기에 아름답지도 않고, 존귀하지도 않았던 이 인물은 사실 온 세상의 구속을 짊어진 참된 메시아이셨습니다. 이 구절은 예수님의 삶 전체, 특히 그분이 세상에서 외면당하고 고난을 당하셨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그 고난의 이유가 단지 세상의 오해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 계획 속에 철저히 들어 있었다는 것을 증언합니다.

 

멸시와 버림받음의 실상 (53:3 상반절)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이 구절의 핵심 동사인 ‘멸시하다’(נִבְזֶה, nivzeh)는 단순히 무시한다는 의미를 넘어, 가볍게 여기고 하찮게 여긴다는 강한 부정의 뉘앙스를 가집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서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를 정확히 묘사해 줍니다. 사람들은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에도 불구하고, 보잘것없는 배경과 겸손한 삶의 모습만을 보고 그를 하찮게 여겼습니다. 사람들의 눈은 그분의 신성을 보지 못했고, 그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버림받았다”(חֲדַל אִישִׁים, chadal 'ishim)라는 표현은 공동체 안에서의 단절과 소외를 의미합니다. 이 말은 예수님께서 단지 인기 없는 예언자가 아니라, 체계적으로 사회로부터 배척당하고 조롱받았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분은 나사렛에서 배척당했고, 예루살렘에서 조롱당하셨으며, 결국 골고다 언덕에서는 제자들에게조차 외면당하셨습니다. 이는 단순한 불운이나 역사적 불일치가 아니라, 죄로 가득한 세상이 거룩한 하나님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본질적인 죄악의 결과입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구원자를 기대했지만, 정작 참된 구원자가 왔을 때에는 그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요한복음 1장 11절은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라고 말합니다. 이 멸시와 버림은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인류가 얼마나 하나님과 멀어졌는지를 드러내는 심각한 죄의 실상을 반영하는 장면입니다.

 

고난의 사람, 질고를 아는 자 (53:3 중반절)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이사야는 이어서 이 종을 “간고를 많이 겪은 사람”이라 부릅니다. 여기서 ‘간고’(מַכְאֹבוֹת, makh'ovot)는 육체적 고통뿐 아니라, 정신적·영적 고뇌까지 포함한 고난의 총체를 말합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고난을 ‘경험하신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고난의 정수를 아시는 분이십니다. 히브리서 4장 15절은 그분을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 소개하며, 우리 고통의 깊이를 이해하시고 동참하시는 대제사장으로 묘사합니다.

 

‘질고’(חֳלִי, choliy)는 질병 혹은 연약함을 뜻합니다. 예수님은 인간이 겪는 연약함과 슬픔, 아픔을 결코 멀리서 바라보는 분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실제로 배고픔을 느끼셨고, 눈물을 흘리셨으며, 배반당하고 조롱당하고 고문당하셨습니다. 그는 육체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완전히 깨어지는 고통을 경험하신 참된 사람이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독특성입니다. 다른 종교는 신이 인간의 세계 바깥에 있다고 말하지만, 복음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고난 한가운데로 들어오셨다고 말합니다. 십자가 위에서, 그분은 고난의 정점에 서셨고, 우리가 마땅히 감당해야 할 질고를 친히 짊어지셨습니다. 이 고난은 단지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하신 구속의 길이었습니다. 고난받는 종은 그 고통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시는 사명을 감당하셨습니다.

 

사람들이 그를 싫어하고 돌아보지 않았다 (53:3 하반절)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여기서 이사야는 매우 구체적인 심리적 반응을 묘사합니다.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다”는 표현은 당시 사회에서 부정하거나 부끄럽다고 여긴 사람에게 보이는 전형적인 반응을 묘사하는 구절입니다. 수치스러운 사람을 볼 때 얼굴을 돌리는 것, 그것이 바로 예수님께 대한 당시 사람들의 반응이었습니다. 그분의 고난은 너무도 잔인하고 모욕적이었기에 사람들은 그 모습을 바라보기를 거부했습니다.

 

“멸시를 당하였고”라는 반복은 그분이 단순히 고통을 받았다는 것보다, 그 고통이 얼마나 철저한 사회적 조롱과 경멸을 수반했는지를 강조합니다. 이는 단순한 슬픔의 감정이 아니라, 수치와 경멸의 대상이 된 심각한 상태를 묘사합니다. 로마의 십자가형은 가장 수치스럽고 잔인한 형벌이었습니다. 죄수는 나체로 매달렸고, 온갖 조롱과 침뱉음을 당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러한 자리에 오르신 것입니다.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다”는 이사야의 고백은 당시 이스라엘 백성만이 아니라, 인간 전체의 반응을 포함합니다. 그는 우리 죄로 인해 고난을 당하셨지만, 우리는 오히려 그를 무가치하게 여겼습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의 충격입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고통을 그가 당하셨고, 그 안에서 우리는 은혜를 입었지만, 정작 우리는 그분을 귀히 여기지 않았습니다.

 

이 구절은 신자가 날마다 회개하는 이유가 됩니다. 우리는 복음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귀히 여기는 자로 살아야 하며, 그분을 경외하고 사랑하며 따라야 합니다. 이사야는 단지 예언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포함한 인간 전체의 죄된 본성과 반응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회개의 출발입니다.

 

결론

이사야 53장 3절은 고난받는 종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을 우리 앞에 분명하게 드러냅니다. 그는 멸시받았고, 버림받았으며, 고난과 질병을 아시는 분이셨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를 외면했고, 귀히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모습이 구속사의 중심이었고,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었습니다.

그리스도는 오늘도 세상의 시선에서는 무가치하게 보일 수 있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지극히 존귀하신 구속자이십니다. 우리의 구원은 바로 그 낮아지고 외면당한 분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을 바라보며, 더 이상 외면하지 말고, 진심으로 귀히 여기며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멸시당하셨지만, 그 멸시 속에서 우리에게 참된 구원의 길을 여셨습니다. 그 길을 따라가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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