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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설교문

[신년 주일 예배 설교] 가나의 혼인 잔치의 기적

by 파피루스 2022. 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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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주일 예배 설교] 가나의 혼인 잔치의 기적

[신년 주일 예배 설교] 가나의 혼인 잔치의 기적

포도주가 떨어진 결혼 잔치

이런 기막힌 일이 또 있을까요? 갑자기 혼인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즐거운 혼인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진다는 것은 흥이 모두 깨진다는 의미입니다. 더 이상 결혼 잔치는 의미를 잃어버립니다. 사람들은 투덜거리며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한 혼주들에게 화를 낼 겁니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고 예상하고 계획한 일만 일어나는 것이 절대 압니다.

왜 일어났을까요?

 

먼저는 오는 객이 이렇게 많을 줄 전혀 예상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100명을 예상했는데 갑자기 두 배가 되는 200명이 왔을 수도 있습니다.

 

둘째는 생각 외로 많은 포도주를 마실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보통 사람은 3잔이면 될 것을 이번에 온 객들이 갑자기 4잔 닷잔을 마시는 겁니다. 그럼 준비한 포도주가 바닥이 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왜 어떻게해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합니다. 포도주가 떨어진 결혼 잔치는 인류의 모습을 그대로 닮아 있습니다. 사람들은 나름대로 계획하고 생각하고 준비하지만 잘 되지 않습니다. 결국 예상치 못한 일이 종종 벌어집니다.

김회권 교수는 좀더 상징적인 의미로 포도주가 바낙난 사건을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의 파기된 사건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 해석은 굉장히 신빙성이 있고, 요한복음 전체의 주장과 잘 맞아떨어집니다. [참조 김회권 <요한복음> 복 있는 사람]

 

예수님을 찾으라

문제가 발생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너무 뻔한 답을 하고 있을까요? 아닙니다.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집니다. 마리아가 육신의 아들인 예수님을 찾아갑니다.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이 단순한 사실을 고할 뿐입니다. 마리아는 도대체 어떤 마음으로 예수님을 찾아갔을까요? 정말 메시아로 알았을까요? 인성 속에 감추어진 신성을 안 걸까요? 우리는 알았을 거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만 보면요. 하지만 요한복음 안에서 마리아는 예수님의 사역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왜 예수님을 찾아갔을까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너무 쉽게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었기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복음서 곳곳에서 예수님이 설교하실 때 다른 가족들이 예수님을 '미쳤다'라고 생각했다는 것을 기억하면 마리의 행동이 굉장히 도발적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마리아의 마음은 나중에 천국에 갔을 때 물어봅시다.

 

그러나 요한복음의 저자인 요한은 마리아가 예수님을 찾아간 사건을 유독 강조하고 있으며, 그 과정과 결과를 상세하게 보도합니다. 마치 고난당한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나아가 간구하는 것과 심히 닮아 있다는 것입니다. 요한은 의도적으로 그 부분이 연상되도록 이야기를 끌고 갑니다.

 

우리는 결과를 압니다. 예수님을 찾아가야 하는 이유도 압니다. 뭘까요? 예수님의 새로운 사역, 즉 공생애가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2장 1절 '사흘째 되던 날'을 조금 계산할 필요가 있습니다. 29절 이튿날, 35절 이튿날, 43절 이튿날, 그리고 사흘째 되던 날이 곧 가나의 혼인 잔칫날입니다. 이날을 모두 합하면 가나의 혼인 잔칫날은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신 날로부터 정확히 7일째 되는 날입니다. 그날은 완성의 날이며, 안식의 날이며, 모든 것이 마무리되는 축제와 기쁨의 날입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날 포도주가 떨어진 것입니다. 인류의 비극입니다. 하지만 그 비극이 곧 새로운 역사의 시작이 됩니다. 누구 때문에요? 네 예수님 때문입니다. 요한은 이러한 날짜를 통해 예수님을 새로운 역사를 만드시는 분이시며, 비극을 희극으로, 사망과 절망의 역사를 생명과 소망의 역사로 역전시키시는 분임을 말합니다.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예수님은 하인들에게 명령합니다.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설명하지 않습니다. 명령하십니다. 친절하게 말했을까요? 네 그랬을 겁니다. 하지만 표현은 친절했지만 불친절했습니다. 왜냐하면 이유도 목적도 설명하지 않고 그냥 명령만 했기 때문입니다. 물을 다 채우자 이번에도 다시 명령합니다.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갔다 주라"

종들은 갔다 주었고, 연회장은 이렇게 좋은 포도주를 숨겼다고 칭찬을 합니다.

여러분 종종 복음이 불친절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까? 모든 말씀이 잘 이해가 되고, 잘 용납이 되십니까?

종들은 예수님의 명을 받고 얼마나 투덜거렸을까요?

"아니 왜? 이런 쓸모없는 짓을 할까? 지금 포도주가 떨어졌지 물이 떨어졌나?"

"물을 채우라 하더니 이걸 그냥 갔다 주라고? 그럼 나만 바보 되는 거 아냐?"

우리의 모습 아닙니까?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불평을 하든 안 하든 그런 생각이 드는 게 당연합니다. 이유야 어떻게 그들은 순종했고, 기적을 체험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2022년도 불친절한 한 해가 될지 모릅니다. 예수님께서 종들을 모아놓고 친절하게 모든 계획을 설명한 다음 일을 진행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있습니다.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있습니다. 왜? 시키는지? 왜 해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갈 때가 있습니다. 모든 것이 친절하고 부드러우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때가 많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때도 주님을 순종해야 합니다. 순종할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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