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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기도문

<찔레꽃> 노래에 가사가 셋인 사연

by 파피루스 2020. 1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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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찔레꽃> 노래에 가사가 셋인 사연 
sanha88 (71)in #kr • 3년 전 (edited) 
배우 김윤진 출연작 중 <하모니>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실제로 결성돼 대외 공연까지도 했던 청주 여자 교도소 수용자 합창단을 모티브로 만든 영화였는데 극중 합창을 지도하는 전직 음대 교수 역을 맡은 이가 <아이 캔 스피크>로 노년의 절정을 구가하신 나문희씨였죠. 오랫 동안 성심껏 가르쳐 온 제자가 남편과의 불륜 관계에 있음을 알고 둘 다 살해한 사형수 배역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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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말미에 그녀의 사형이 집행됩니다. 그때 사형장으로 걸어가는 나문희의 등 뒤에서 합창단원들이 통곡의 노래를 부르죠. 한국 사람이라면 가사는 몰라도 멜로디만큼은 거의 다 흥얼거릴 수 있는 노래. <찔레꽃>입니다. “엄마 일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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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래는 <찔레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태선 작사 박태준 작곡의 <가을밤>으로도 기억되기도 하죠. <가을밤>은 유서 깊은(?) 감기약 판피린의 CM송이기도 했습니다. 1절 “가을밤 외로운밤 벌레 우는 밤” 가사가 흘러나오고 “감기 조심하세요” 멘트가 광고를 완성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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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태선 작사의 <가을밤> 가사에는 ‘찔레꽃’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또 ‘찔레꽃’과 ‘가을밤’은 사실 어울리지 않는 조합입니다. 찔레꽃은 봄부터 여름까지 피는 꽃이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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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어긋남의 배경에는 이게 원작자의 가사를 싹 뜯어고쳐야 했던 한국 현대사의 비극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원래 이 노래의 제목은 <기러기>였습니다. 윤복진이라는 작사가의 작품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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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 밑에 귀뚜라미 우는 달밤에/ 길을 잃은 기러기 날아갑니다./ 가도 가도 끝없는 넓은 하늘로 / 엄마 엄마 찾으며 흘러갑니다.”(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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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문제가 생깁니다. 해방과 전쟁의 북새통 와중에 이 윤복진이 월북을 해 버립니다. 월북 작가들의 작품은 80년대 말까지도 봉인돼 있었고 그들의 작품을 대놓고 부르는 것은 ‘사상이 의심스러운’ 행동이었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태반이 금지곡으로 묶였지만 몇몇 노래는 없애 버리기엔 좀 아까웠던지 가사를 싹 바꿔 버려 작사자의 흔적을 지우려 했고, 그 결과가 이태선 작사의 <가을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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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밤 외로운밤 벌레 우는 밤 초가집 뒷산길 어두워질 때/ 엄마 품이 그리워 눈물 나오면/ 마루 끝에 나와 앉아 별만 셉니다./ 가을밤 고요한 밤 잠 안오는 밤 기러기 울음소리 높고 낮을 때 엄마 품이 그리워 눈물 나오면 마루 끝에 나와 앉아 별만 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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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1절 가사는 1929년 12월 7일자 동아일보에 이정구라는 사람의 이름으로 실려 있습니다. 즉 원작자는 이태선이 아닌 거죠. 원작자가 가려진 이유 역시 같습니다. 이정구도 월북했거든요. 그래서 그 이름을 쓰지 못하고 이태선의 이름이 작사가에 오르게 된 겁니다. 이렇게 노래는 바뀌었지만 여전히 우리가 아는 ‘찔레꽃’은 가사에 없습니다. 어떻게 된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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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유는 1972년 가수 이연실이 이 노래에 새로운 가사를 붙여 <찔레꽃>을 발표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익히 아는 그 가사 “엄마 일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 말이죠. 그런데 이연실의 가사 역시 순수한 창작물은 아닙니다. 1930년 이원수 (고향의 봄의 작사자)가 지은 동시에 이미 등장하고 있거든요. 



“찔레꽃이 하얗게 피었다오 / 언니 일 가는 광산 길에 피었다오/ 찔레꽃 이파리는 맛도 있지/ 배고픈 날 따먹는 꽃이라오. / 광산에서 돌 깨는 언니 보려고/ 해가 저문 산길에 나왔다가/ 찔레꽃 한잎 두잎 따 먹었다오/ 저녁 굶고 찔레꽃을 따 먹었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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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찔레꽃의 모티브를 가져온 이연실은 더욱 가슴을 저미는 가사로 만들어 청아하면서도 구슬픈 목소리에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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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일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 찔레꽃 하얀 잎은 맛도 좋지 
배고픈 날 가만히 따먹었다오 / 엄마엄마 부르며 따먹었다오. 
밤깊어 까만 데 엄마 혼자서 / 하얀 발목 바쁘게 내려오시네 
밤마다 꾸는 꿈은 하얀 엄마꿈 / 산등성이 너머로 흔들리는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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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이 노래에는 <고향의 봄>의 작사가 이원수와 두 월북자 <기러기>의 작사가 윤복진과 ‘가을밤’을 노래한 이정구, 70년대의 가수 이연실의 감흥과 재능과 자취가 모두 녹아 있습니다. 이렇게 엮이다 보니 계절 감각이 좀 어색해져 버린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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찔레꽃이 상징하는 가난의 아픔과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이연실의 낭랑하지만 구슬픈 목소리에 실리자 이제 이 노래는 더 이상 동요가 아니라 민요의 반열에 등극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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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을 등지고 부모와 이별하여 어떻게든 살아 보겠다고 서울로, 또 타향으로 스며든 사람들에게 이 노래는 성능 좋은 최루탄이었고 비슷한 처지끼리 마음의 벽을 누그러뜨릴 수 있는 안정제였으며 피치 못하게 고향을 가지 못할 때 옥상에 올라 달 보며 부르는 망향가에 사모곡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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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만난 사람 중에 가장 유명한 가수라면 소프라노 신영옥을 들 수 있을 것 같은데 인터뷰하면서 그녀가 이렇게 얘기했던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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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참 좋아하신 노래였어요. 엄마 하면 그 노래가 생각날 만큼 자주 불러 주셨죠. 그런데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제가 임종을 못했어요. 공연을 앞두고 있었는데 가족들이 걱정할까봐 말을 안했던 거죠. 우두커니 거실에 앉아서 그 노래 부르다 많이 울었어요. 2절이 특히 그랬어요. 노래를 끝까지 못 부르고 울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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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러운 현대사 속에서 몇 번에 걸쳐 바뀌고 짜깁기되고 변형됐고, 그래서 부르는 사람마다 가사가 조금씩 다른 노래. <찔레꽃> <가을밤> <기러기> 하지만 같은 노래. 그 노래들을 아랫집에서 들려오는 하모니카 소리를 들으며 떠올려 봤습니다. 개인적으로 찔레꽃의 새하얀 아픔도 좋지만 윤복진 원작의 <기러기>에 마음이 갑니다. 한 사람의 흔적을 지워버리려 했던 잔인한 과거를 비집고 나오는 기러기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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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잎이 우수수 지는 달밤에 
아들 찾는 기러기 울고갑니다. 
'엄마엄마' 울고간 잠든 하늘로 
'기럭기럭' 부르며 찾아갑니다. (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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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4.3 추념식에서 가수 이은미가 <찔레꽃>을 이연실 버전으로 불렀습니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었을 4.3의 희생자 자녀들은 아마 이 노래 들으며 많이 울었을 것 같습니다. 한 번 불러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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