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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사도행전 1장 승천과 맛디아를 세움

by 파피루스 2021. 9.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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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장 승천과 맛디아를 세움

사도행전 1:1-5 약속한 것을 기다리라

[사도행전 1:1-5]
1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2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3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4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주해

1절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Τὸν μὲν πρῶτον λόγον ἐποιησάμην περὶ πάντων, ὦ Θεόφιλε, ὧν ἤρξατο ὁ Ἰησοῦς ποιεῖν τε καὶ διδάσκειν,

1절은 순서를 봅시다. 순서대로 직역하면

먼저 쓴 글에는, 데오빌로여,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이다. 이 글(사도행전)이 누가복음의 연장인 것을 확인시켜 주려는 의도로 보인다. 누가는 예수의 생애를 경험하지 못했고, 증언자들의 증언을 듣고 연대기적 서술방식으로 가능한 자세로 기록하려고 했다. 누가복음은 다른 복음서에 비해 훨등히 현대적 역사 서술방식에 가깝다. 물론 고대의 기술방식임을 감안하고 읽어야 한다. 이제는 자신의 직접 보고 듣고 경험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물론 초반부는 누가가 경험하지 못했다. 이것 역시 증언에 의한다. 사도행전 16:10에 '우리'라는 표현이 처음 등장하는 것을 볼 때 누가는 2차 전도 여행 전에 이미 예수를 믿은 것으로 보인다. 아니면 초기에 믿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명확하지 않다. 하여튼 누가는 예수의 승천 이후에 합류한 것은 분명하다.

 

데오빌로가 누구인지 아무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누가와 굉징히 친밀한 사람이나는 것과 로마의 높은 관직에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그는 복음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아마 예수를 믿은 지 얼마되지 않아 더 깊은 복음을 알고 싶어 누가의 글을 요구했는지도 모른다. 일부의 학자들은 가상의 인물이라고 주장하지만 신빙성은 낮다. 실존 인물이 가능성이 훨씬 높다.

 

사도행전 1:2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ἄχρι ἧς ἡμέρας ἐντειλάμενος τοῖς ἀποστόλοις διὰ Πνεύματος Ἁγίου οὓς ἐξελέξατο ἀνελήμφθη·

복음의 기원에 대해 말한다. 복음은 사도들에게 전해진 예수의 가르침이다. '승천하신 날까지'의 표현은 사도행전 1장의 승천까지이다. 하지만 누가복음에는 승천에 대한 짦은 이야기만 남겨져 있다.

 

누가복음 24:50 예수께서 그들을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그들에게 축복하시더니
누가복음 24:51 축복하실 때에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려지시니]
누가복음 24:52 그들이 [그에게 경배하고]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가
누가복음 24:53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니라

 

그럼에도 다른 복음서에 기록되지 않은 승천 내용은 대단히 기이하다. 왜 더 늦게 기록된 마태복음과 요한복음에는 승천에 대한 내용이 없을까? 연구해볼만한 주제다. 하여튼 누가복음은 성령으로 명한 예수의 가르침이라는 점에 방점을 찍는다. 누가는 처음부터 '성령'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승천까지를 '복음'이라고 한다. 복음은 성육신과 공생애, 고난,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승천까지를 포함한다.

 

사도행전 1:3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3절은 2절의 추가 설명이고 구체화이다. '고난'은 십자가를 말하며, '후'는 부화를 말한다. 누가는 부활을 말하지 않고 '고난 받으신 후'라는 표현을 통해 십자가를 강조하는 동시에 복음의 핵심인 십자가의 문제를 강조한다. 복음 전함에 있어 고난은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싶어하는지도.  '확실한 많은 증거'는 부활 후 사십 일 동안 부활한 모습을 보이신 것과 기적을 말한다. 제자들에게 부활의 모습을 보이심으로 확실한 증거를 보이셨다.


사도행전 1:4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4절은 승천 직전의 권고이다. 핵심은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 즉 성령을 말한다. 그런데 성령을 받기 위해서는 '예루살렘'에 머물러야 한다. 왜냐하면 복음은 예루살렘에서 퍼져 나가기 때문이다. 8절을 참고 바람. 성령을 거저 받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공간과 시간이 필요하며, 인내가 필요하다. 기다림은 단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기도함으로 기다린다.


사도행전 1: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세례요한는 물로 세례를 베풀었다. 하지만 성령세계는 불로 올 것이다. 여기서 물은 구약을, 불은 신약을 상징한다. 과도한 해석이 아니다. 물은 기존의 것을 그대로 두고 외형을 씻지만, 불은 사멸과 죽음, 완전히 멸소를 말한다. 그러므로 불의 세례로서의 성령 충만은 완전한 파괴인 동시에 완전한 창조를 뜻한다.

 

강해


1. 사도행전의 기록 목적


사도행전은 독립적인 서신이 아닙니다. ‘먼저 쓴 글’은 누가복음이며, 사도행전은 누가복음 이후의 예수님의 제자들의 행적을 다루고 있습니다.

먼저 쓴 글, 즉 누가복음에는 예수님의 행하심과 가르치시며,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기록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의 전사역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누가는 부활 이후 예수님를 따르는 제사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기 위해 사도행전을 기록했습니다.

부활은 어떤 면에서 당연한 것이었지만 제자들의 입장에서 황당한 사건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부활하신 주님께서 영원토록 함께 계실 것 같았는데 갑자기 승천하심을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2. 사십일 동안의 증거

예수님은 부활 이후 곧바로 승천하지 않으시고 사십일 동안 제자들에게 나타나셨고, 함께 하셨습니다. 누가는 이것을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3절) 보이셨다고 말합니다. 즉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직전까지 멈추지 않으시고 계속하여 제자들을 가르치셨습니다. 

인간의 육신을 가진 우리는 부활을 쉽게 믿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믿고 있는 것 같지만 위기의 순간 우리는 종종 절망스러운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계속하여, 반복적으로 나타나시고 보여주심의 부활의 증거들을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는 참으로 연약하고 부족합니다. 쉽게 믿지 못하며, 쉽게 의심합니다. 그러나 믿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서는 너무나 쉽게 믿어 버리는 실수는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이러한 연약함을 아시고 계속하여 부활의 증거들을 보이셨습니다.


3. 성령을 약속하심


예수님은 아무런 준비도 없이 제자들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지만 하나님은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입니다. 

이제 새로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육신으로 거하지 않으시고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이제 성령의 시대가 도래한 것입니다.

사도행전 1:6-11 승천과 부활의 증인

 

[사도행전 1:6-11] 
6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7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9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10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11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주해

 

사도행전 1:6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하나님 나라에 대한 질문이다. 제자들은 기다렸다. 이스라엘이 다윗과 같이 완전한 독립의 때를. '회복'이란 단어는 아직 회복하지 못했음을 말한다. 또한 회복할 것에 대한 기대가 있음을 말한다. '이 때'라는 표현은 절박한 심정이 아닐까? 하지만 누구의 말대로 이 질문은 굉장히 당황스럽고 어이가 없다. 지금까지 그많은 설교를 듣고 기적을 보았음에도 예수가 말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이해가 전무하다. 교회만 오래 다닌다고 믿음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바른 신앙을 위해서는 반드시 영혼의 각성이 일어나야 한다.

 

사도행전 1:7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εἶπεν πρὸς αὐτούς Οὐχ ὑμῶν ἐστιν γνῶναι χρόνους ἢ καιροὺς οὓς ὁ Πατὴρ ἔθετο ἐν τῇ ἰδίᾳ ἐξουσίᾳ,

 

그가 말했다. 그건 니들이 알바 아니다. 때와 시기(χρόνους ἢ καιροὺς)는 아버지의 권이다. 여기서 때와 시기는 크로노스와 카이로스다. 일반적으로 크로노스는 연대기적 시간이고, 카이로스는 이벤트적 시간, 즉 어느 일정의 시각에 일어난 사건과 같은 것이다. 어떤 목사는 카이로스가 무슨 대단한 것인양 자랑하는데. 제발 그러지 말시길. 역사나 사건이나 모든 하나님의 손 아래 있다. 역사 없이 사건 없고, 사건 없이 역사는 무의미하다.

우리는 모두 어떤 사건의 때를 알고 싶어한다. 점쟁이처럼. 하지만 우리는 알지 못한다. 하나님은 왜 이런 사건을 공개하지 않는가.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언제나 동일해야 한다. 평범한 일상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구현해야 한다. 사건은 필요하나, 역사를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이다.

 

사도행전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성령이 임한다는 표현은 2인칭 중간태 직설법으로 사용되었다. 객관적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성령을 받으면 두 가지 결과를 얻는다. 권능과 증인이다. 둘은 다르나 같은 말이다. 권능은 증인의 요소이다.

 

1) 권능(δύναμις)을 받고

2) 내 증인(μάρτυς)이 되리라.

 

증인 후일에 순교자의 뜻이 된다. 혹자들은 증인이 곧 순교자라는 말은 2세기 중반 이후에 일어난 것이기에 여기서 그 의미를 부여하면 안된다라고 말한다. 단어의 역사적 맥락을 고려한 해석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증언하다는 곧 순교를 각오한 것이기에 두 의미가 초대교회시절부터 엄격하게 구분된 것이 아니다. 서로 동일한 범주 안에서 해석된 의미다. 이 부분은 복음을 전하는 자에대한 개인적 변화이다.

 

두 번째는 복음의 방향 또는 공간성을 보자. 처음은 예루살렘이고, 그 다음은 유대이고, 그 다음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이다. 당시 땅끝은 서바나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단어가 단지 그 의미로만 사용된 것인지 확장된 의미로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곳까지 포함하는지를 알 수 없다. 처음 의미가 더 강할 것이다.복음 전파의 우선순위는 내 민족(이스라엘-유대인)부터이다. 바울은 이것을 잘 지켰다. 하지만 그들이 거절하게 이방인에게로 향했다.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을 받았지만 처음부터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니다.

 

  • 사도행전 18:5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니
  • 사도행전 18:6 그들이 대적하여 비방하거늘 바울이 옷을 털면서 이르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 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하고

사도행전 1:9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증인은 부활의 증인이다. 또한 승천의 증인이기도 하다. 예수님은 그들의 보는 자리에서 하늘로 올라가셨다. 이러한 모티브는 구약의 하나님이나 천사들이 보인 모습이다. 예수는 이 땅의 사람이 아님을 분명히 보이려는 의도다. 구름은 하나님의 임재와 정체성을 상징한다. 하나님은 볼 수 없는 분이시다. 예수님은 이제 그들의 육신적 시각으로 볼 수 없다. 그는 영원한 하늘에 계신다. 물론 이 땅에도. 구약에서 구름은 종종 하나님의 신성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였다는 것을 주의해서 읽을 필요가 있다.


사도행전 1:10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흰 옷'의 의미는 다양하지만, 여기서 천상의 존재인 천사의 신성을 의미한다. 또한 거룩을 의미하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천사와 같이 흰 옷을 입게 될 것이다. 희다는 말은 더럽혀지지 않은 순결한, 결백한, 순진한, 정직한 뜻이다. 그들의 증언은 확실하고 정직하다. '두 사람'은 법정에서 최소한의 증인이다. 한 사람은 거짓으로 얼마든지 꾸밀 수 있기 때문이다.

  • 신명기 19:15 사람의 모든 악에 관하여 또한 모든 죄에 관하여는 한 증인으로만 정할 것이 아니요 두 증인의 입으로나 또는 세 증인의 입으로 그 사건을 확정할 것이며

사도행전 1:11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종말의 때에 강림은 승천할 때의 본 그대로 오신다. 하지만 이제는 구원자가 아닌 심판자로 올 것이다. 

강해


1. 이스라엘의 회복

예수님과 모였을 때 제자들이 물었습니다.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
질문 하나하나 살펴보면 제자들의 마음은 아직도 무지몽매한 가운데 있음을 발견합니다. 먼저 ‘주께서’라는 단어를 봅시다. 제자들은 아직도 예수님께서 다시 이스라엘을 회복하는 주체로 보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계획과 의도는 전혀 상관없이 오직 자신들의 나라가 회복되는 것만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둘째, 이스라엘 나라도 이상합니다. 그들은 아직 하나님의 나라가 예수님을 통해 혈통과 지역을 초월하여 임재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육적 이스라엘에 한정된 제자들을 봅니다.
셋째, ‘이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때가 아니라 이미 임했습니다. 그럼에도 제자들은 육적 이스라엘의 회복을 기대한 나머지 진정한 하나님의 나라의 회복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2. 성령을 받으라

예수님의 제자들의 질문에 그런 것은 아버지의 권한이니 너희들이 신경쓰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럼 무엇을 해야 할까요? 주님은 제자들을 향하여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그렇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먼저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을 받지 않고 증인이 될 수 없습니다. 


3. 종말론적 신앙


예수님은 말씀을 마치시고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구름을 타고 승천하십니다. 제자들이 하늘을 쳐다보며 넋을 잃고 있을 때 흰옷 입은 두 사람이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하늘로 가심 그대로 오실리라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오십니다. 다시 오셔서 세상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처음 예수님께서 오신 것은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하지만 다시 오실 때는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를 구분하여 심판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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