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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오경/창세기

[창세기 강해] 1:1-2 태초의 창조

by 파피루스 2018. 1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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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강해] 1:1-2 태초의 창조

 

[성경 본문]

 

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3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주해]

 

고든 웬함은 1:1-2:3까지를 포괄적으로 다루며 서론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정당한 관점이며, 1-11장의 가장 서론부에 해당되는 창조에 관한 것을 담고 있다. 웬함은 1:1절이 7개의 단어로 구성되어 있고, 2:2이 배인 14개의 단어로 구성되어 있음을 언급한다. 기회가 되면 다루겠지만 히브리인들에게 숫자는 매우 중요한 상징이다. 특히 7은 완전수이며, 신의 수이다. 반면 6은 불완전수이며 사람의 숫이다. 계시록의 666은 사람의 숫자의 세 번 반복을 통해 신이 되려하는 악마적 탐욕을 말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코 7은 되지 못한다.

 

태초에

 

성경의 첫 장 첫 절은 이렇게 기록되어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베레쉬트 바라 엘로힘 하샤마임 하에레츠

 

이것은 모든 장엄한 서막’(고든 웬함)이다. 또한 시작과 기원을 말하는 동시에 모든 존재의 근원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명시한다. ‘태초에’(베레쉬트)는 이곳에서 단 한 번 사용된 단어다. 이 단어가 정확하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단어를 분석하면 이란 개념이며, ‘레쉬트머리(로쉬)’처음(리숀)’이 합해진 것으로 보인다. 번역하면 처음에가 될 것이며, ‘태초에라는 번역도 틀리지 않다.

 

존 왈튼은 새로운 왕이 등극할 때 레쉬트라는 단어를 사용했다고 말하면 이것은 한 시점이 아니라 초기의 시간을 가리켰다’(존 왈튼, 창세기 주석)고 말한다. 고든 콘웰은 영원 속에서의 특정한 시기가 아니라 시간의 처음 그 자체를 가리키고 있음을 암시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레쉬트가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하나님은 왕이시다가 아닐까. 하나님께서 모든 존재들의 왕이며, 세상의 왕임을 선포하는 일종의 선언문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창조하다라는 동서가 신적 동사로서 신에게만 사용된다는 점이다. 고든 콘웰은 수 17:15을 들어 피엘형인 자르다나누다’(베레)와 어원적으로 연결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콘웰의 주장은 창조 자체가 혼돈에서 질서로, 부재에서 충만으로 진행하고 있음을 분명히 한다.

 

창조는 무에서 유로의 이동이 아니라는 점에서 주의해야 한다. 무가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창조되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첫째), 창조는 결코 이방 신들의 속성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둘째, 본문은 결코 하나님이 어떤 것으로부터 창조하셨다고 진술하지 않는다.

셋째, 가장 자주 거명되는 피조물은 사람과 예기치 않은 새로운 것들이며, 바다 괴물들, 산들, 그리고 동물들은 보다 드물게 언급되어 있다.(고든 콘웰)

 

하늘과 땅

 

1절이 전체 창조의 이야기의 서론인지, 아니면 연속적 구절인지 학자들 간의 논쟁은 뜨겁다. 필자는 서론에 해당된다고 확신한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창세기 안에 지구의 창조가 없다는 것이다. 지구, 즉 땅은 오직 1절에만 기록되어 있다. 땅은 에레츠로 사람들이 살아갈 삶의 터전이나 기업으로 사용되는 단어다. 일반적인 대지의 개념이 아닌 것이다. 또한 에레츠는 단독적으로 있지 않고 하늘(샤마임)의 대칭으로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을 볼 때, 하늘과 땅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하늘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지기를 기도할 예수의 기도와 연결된다고 확신한다.

 

하늘은 샤마임으로 문자적으로 하늘들이라는 복수이다. 히브리어에서 복수형은 힘과 권세를 상징하거나 신적능력을 나타낼 때 사용된다. 또한 하늘은 하나님의 피조물이다. 상징 속에서 하늘은 하나님의 거처로 표현되지만 엄밀하게 하나님()은 모든 존재가 거처이며, 모든 존재의 거처이시다. 창세기 기자는 의도적으로 땅의 하늘의 반영이며, 하나로 연결되어 있으며, 동시에 둘 다 하나님의 피조물인 것을 강조한다.

 

땅의 혼돈과 공허

 

창세기 1:1-3절은 단어 하나하나 살펴필요가 있다. 이제 창조 이야기는 하나님에게서 하늘로, 하늘에서 다시 땅으로 나아간다. 창조 당시 땅(에레츠)은 혼돈(토후)과 공허(보후)한 상태이다. 혼돈은 질서가 없다는 말이며, 공허는 혼돈의 다른 표현이다. 두 단어는 정확하게 사람이 살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후에 동일한 단어가 바벨론의 공격으로 유다가 폐허가 되었을 때 사용된다.

 

4:23 보라 내가 땅을 본즉 혼돈하고 공허하며 하늘에는 빛이 없으며

 

창조의 목적지는 에덴동산이다. 그곳은 사람의 거처이다. 이전의 육일 동안 하나님은 에덴동산을 만드는 과정이며, 사람들이 살 수 있는 땅(에레츠)를 만들기 위한 준비시간인 셈이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가아할 새로운 동산, 가나안으로 가야할 필요성을 암시한다. 그곳은 잃어버린 동산이며, 돌아가야 할 고향의 원형(原形)이다.

 

하나님의 영의 운행

 

혼돈과 공허는 다시 원시의 바다로 이어진다. ‘흑암이 깊음 위에 있다는 표현은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원시의 세계이며, 하나님께서 아직 질서를 세우기 이전의 상태이다.

 

에누마 엘리시와 같은 신화는 마르둑의 대적자인 티아마트를 의인화된 바라도 본다. 혼돈의 세력으로서의 여신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성경은 깊음을 의인화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물체에 불과하다. 욥기에서 바다는 리워야단과 같은 통제 불가능한 괴물들의 거처로 나온다. 성경은 바다를 하나님의 대적자가 아니라 피조물로 그려낸다.

 

하나님의 영이 수면 위에 운행(라카프)하신다. 운행한다는 표현은 떨리다(23:9)’ ‘너풀거리다(32:11)란 뜻으로 해석된다. 특히 신명기의 표현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보호하신다는 의미에서 상징적으로 사용된다. 바다가 종종 광야의 의미로 사용된 것과 비교해 본다면 창세기 1:2은 정확하게 출애굽하여 광야의 깊음에 내 던져진 이스라엘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암시이다. 그러므로 이 동사는 구원사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마땅하다.

 

결론

 

창세기 1:1-2절은 모든 성경과 모세오경, 그리고 창세기의 서론에 해당된다. 하나님은 모든 존재의 시작이자 근원이시다. 하늘과 땅은 하나님의 피조물인 동시에 하나님의 보호의 대상이다. 반신화적이며, 우상들에 대한 도전이다. 애굽의 신들에 물든 이스라엘 민족들에게 모든 피조물의 창조주이시며, 모든 존재의 기원임을 선포하고 있다. ‘레쉬트는 이제 파라오가 아닌 하나님께서 통치하실 것을 선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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